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초판본 한국시문학선집’은 점점 사라져 가는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을 엮은이로 추천했다. 엮은이는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해설과 주석을 덧붙였다.
각 작품들은 초판본을 수정 없이 그대로 타이핑해서 실었다. 초판본을 구하지 못한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다. 저본에 실린 표기를 그대로 살렸고, 오기가 분명한 경우만 바로잡았다. 단, 띄어쓰기는 읽기 편하게 현대의 표기법에 맞춰 고쳤다.
초정(草汀) 김상옥 시 세계에 대한 평가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민족의 정서를 전아한 언어로 빚어냈다는 견해이고, 다른 하나는 시조와 자유시 그리고 동시의 경계를 넘나드는 파격적 형식미를 보여 주었다는 시각이다. 전자가 시조 정감의 변형 문제라면, 후자는 장르의 창신(創新)과 관계된 사안이다. 김상옥은 ‘시조 시인’으로 불리는 것을 탐탁지 않아 했고 시조를 ‘3행시’라 즐겨 불렀다고 회자되기도 한다. 그것은 ‘시조’와 ‘시’의 경계를 거부하는 시관이다. 평자들은 후자의 맥락을 주목해 온 편이고, 본고 또한 그에 동의한다. 김상옥 시조는 고루한 고전 공간을 뛰어넘는 모더니티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말년까지 낸 시조집, 일반 시집, 동시집은 고전의 무의식이 현대시의 무의식과 ‘이접(離接)’됐던 텍스트라 보아야 한다. 제1시집 ≪초적(草笛)≫만 봐도 전아한 고전의 자리가 프로이트적 무의식과 손잡아 열린 ‘사건’임을 알게 된다.
김상옥은 인간이 감내하는 상처, 회탄, 죽음을 행간마다 담아냄으로써 시조가 현대시와 다른 자리가 아님을 드러낸다. 정신의 고결성을 기대하고 김상옥의 시에 들어온 독자들은, 그의 시편들이 지금 여기에 대한 이야기임을 알고 놀랄 것이다. 가령, ≪초적≫은 후반에 재래적 성향이 강한 ‘석굴암’(<십일면관음(十日面觀音)>), ‘다보탑’(<다보탑(多寶塔)>), ‘촉석루’(<촉석루(矗石樓)>), ‘선죽교’(<선죽교(善竹橋)>), ‘무열왕릉’(<무열왕릉(武烈王陵)>) 등을 노래한다. 이 고고학이 백의(白衣)의 혼을 고양하기 위한 의지와 연관된 것임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이 박물지들은 시조의 문법 안에서, 상실의 대상들을 껴안으려는 무의식으로부터 발원한 것이다. 그의 시는 아취 있는 고전 공간이 아닌, 여기 우리들의 비극을 껴안기 위해 생산된다. ‘측간’ 세계를 견디기 위한 페이지들인 것이다. 풍진에서 시인이 불었고 지금까지도 우리를 향해 불고 있는 풀피리. 중기 이후 시는 거기에 댄 입술이 오욕칠정을 쓰다듬는 세계로 열린다.
200자평
김상옥. 대표적인 시조시인이다. 그러나 그의 시를 대하면 깜짝 놀라고 만다. 이것이 과연 시조인가? 그의 시는 고결한 정신을 우아하게 박제한 것이 아니다. 바로 지금, 여기에 대한 이야기다. 상처, 회탄, 죽음…. 지금 이 땅에 있는 우리의 아픔을 껴안기 위해 노래한다.
지은이
김상옥은 1920년 경상남도 통영에서 1남 6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1926년에 서당에서 한문을 공부했으며 1927년 통영공립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소년기에 ‘인쇄소’ 등지를 전전하며 고학했고, 1933년에 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7세 때부터 조연현과 더불어 시지 ≪아(芽)≫에서 동인 활동을 하기도 했는데, 미공개 연보에 따르면 우리나라 최초 동인지인 ≪참새≫에도 참여했다고 한다. 1937년 일경(日警) 때문에 함북의 옹기 지역으로 가 유랑했고, 1938년 함북 청진의 서점에서 일하며 함윤수, 김용호, 김대봉 등과 시지 ≪맥(貊)≫에서 동인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 후엔 서정주, 임화, 박남수, 윤곤강 등과 함께 문학적 교유를 나눈다. 이후 ≪문장(文章)≫ 9호(1939년)에 그의 시 <봉선화>가 이병기의 추천으로 당선되었고, ≪동아일보≫의 시조 공모에서도 <낙엽>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오게 되었다. 누구보다 민족의식이 강했던 그는 해방 전까지 사상 문제로 수차례 피검했는데, 일례로 1941년과 1943년 통영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된 경우가 그렇다. 1943년에 김정자 여사와 결혼했고, 1944년엔 다시 영어(囹圄) 생활을 했다. 그러던 중 폐결핵으로 출감해 마산결핵요양원에서 요양한 후 1946년 삼천포, 마산, 부산 등지에서 교원 일을 하며 창작에 몰두했다. 1947년에 첫 시조집 ≪초적(草笛)≫을 출간하고, 1949년 1월엔 ≪고원(故園)의 곡(曲)≫을 간행한다. 그해 6월에 시집 ≪이단(異端)의 시(詩)≫를, 1952년엔 동시집 ≪석류꽃≫을 냈다. 1956년에 ≪목석(木石)의 노래≫를 냈으며, 통영문인협회를 설립해 회장직을 맡기도 했다. 1969년엔 ‘아자방’이란 골동품과 표구 가게의 사업을 시작했다. 그 후 1973년엔 ≪삼행시육십오 편≫을, 1975년엔 산문집 ≪시와 도자≫를 그곳에서 펴냈다. 1980년엔 시집 ≪묵(墨)을 갈다가≫를 냈고, 1982년엔 제1회 중앙시조대상을 수상했다. 1989년엔 고희 기념 시집 ≪향기 남은 가을≫을 출간했으며, 1994년엔 제2회 충무시문화상을 수상했다. 1997년엔 제9회 삼양문화상(三羊文化賞)을 수상하고, 1998년엔 ≪느티나무의 말≫을 출간했다. 1999년엔 ‘우리 시를 사랑하는 모임’의 고문을 지냈다. 2001년에 시조 선집 ≪촉촉한 눈길≫을 냈고, 그해 6월 서화 개인전을 열었다. 다시 그해 12월에 가람시조문학상을 수상했다. 2002년엔 시조집 ≪초적(草笛)≫의 한정판(재판본)이 출간되었다. 금실이 좋기로 유명했던 시인은 2004년 부인이 사망하자 먹고 마시는 일을 중단했으며, 부인의 장례식 며칠 후 향년 85세에 생을 마감했다.
엮은이
최종환(崔鍾桓) 충남 아산 출생으로 경희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동 대학원에서 <현대시에 나타난 기독교 죄의식의 심리학적 연구>(2003)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희대에 강사로 출강 중이며, 최근 재일조선인 문학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논문으로는 <재일동포 한국어 시문학의 내적 논리와 민족 문학적 성격>(한중인문학연구, 2006), <재일동포 한국어 시문학의 형식적 특징 연구>(한국문학이론과 비평, 2006), <민족문학의 새로운 기반 정초를 위한 재외한인 문학의 가능성>(한국문학이론과 비평, 2008), <몸담론을 통해 본 재일조선인 시>(비교문학, 2009),<남시우 시 연구>(한중인문학연구, 2009), <현대시의 유랑의식 보론>(세계문학비교연구, 2009), <재일제주인 시 연구>(한국문학이론과비평, 2009), <재일조선인문학과 4.19>(우리말글, 2010), <자기서사식 글쓰기 지도에 있어 효과적 피드백 모색>(우리어문, 2012), <경계(境界)의 또 다른 가능성>(국제어문, 2012) 등이 있다.
차례
≪草笛≫
思鄕
春宵
愛情
비 오는 墳墓
江 있는 마을
立冬
어무님
家庭
病床
안해
누님의 죽음
僵屍
懷疑
落葉
囹圄
집오리
흰 돛 하나
路傍
煩惱
廻路
自戒銘
玉笛
矗石樓
≪故園의 曲≫
술레잡기 ①
저믄 들길
≪異端의 詩≫
바위
눈
廁
포풀라
不安
≪석류꽃≫
마눌각씨
할만내
삐비
석류꽃 환한 길
산울림
≪木石의 노래≫
돌
果實 A
果實 B
小品
기러기
風景
≪三行詩 六十五篇≫
無緣
祝祭
撮影
따스롭기 말할 수 없는 無題
항아리
어느 날
꽃의 自叙
不在
억새풀
銀杏잎
圖章
내가 네 房 안에 있는 줄 아는가
모란
꽃과 乞人
꿈의 蓮못
關係
≪墨을 갈다가≫
墨을 갈다가
뜨락
變身의 꽃
回心曲
愁心歌
毒感
白梅
和暢한 날
新綠
不毛의 풀
代役의 풀
異敎의 풀
가슴
邂逅
깃을 떨어뜨린 새
너는 온다
가을과 石手
귓전에 남은 소리
어느 가을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늙으신 어무님은 나만 보고 언정하고
안해는 그 사정을 내게 와 속삭이다
어찌누 그는 남으로 나를 따라 살거니
외로신 어무님은 글안해도 서럽거늘
안해를 가진 맘이 금 갈까 삼가로워
이 밤을 어서 새우고 그를 가서 뵈리라
●외진 길바닥에 얼고 주려 죽은 사람
잦던 숨 끊어질 제 뼈 물은 검은 입술
살아서 분한 그 마음 버리지를 못했어라
이 모진 세상에도 그릴 일이 남았든지
살은 이미 굳었어도 두 눈을 희게 뜨고
저문 날 차운 바람에 들 데 없이 누었어라
●墨을 갈다가
문득 水沒된 무덤을 생각한다.
물 위에 꽃을 뿌리는 이의 마음을 생각한다.
꽃은 물에 떠서 흐르고
마음은 춧돌을 달고 물 밑으로 가라앉는다.
墨을 갈다가
제삿날 놋그릇 같은 달빛을 생각한다.
그 숲 속, 그 달빛 속 인기척을 생각한다.
엿듣지 마라 엿듣지 마라
용케도 살아남았으니
이제 들려줄 것은 벌레의 울음소리밖에 없다.
밤마다 밤이 이슥토록
墨을 갈다가
벼루에 흥건히 괴는 먹물
먹물은 갑자기 선지 빛으로 변한다.
사람은 해치지도 않았는데
지울 수 없는 선지 빛은 온 가슴을 번져 난다.
●여기는 먹고 마신 것이 五臟과 六腑를 거쳐
살과 피와 뼈가 되고 그 남저지를 排泄하는 곳-
다음 끼니 다시 먹고 땔 것을 求하여
내 어디론지 분주히 쏘대다
여기 잠시 들리면 마음 그지없이 편안히 쉬이도다
그 지독한 食慾에 走狗되어
날만 새면 거리에 나와
내 그들과 더부러 장돌림같이 떼재치고
義理를 눈감겨 온갖 거짓을 팔고
참아 말 못할 그 侮辱에도 다시 訶諛를 사고
날이 저물어 山 그림자
이 무거운 가슴 덮어 나리면
기다림과 주림에 겨운 파리한 家眷들이
窓을 내다 움크리고 앉았을
이 게딱지 같은 오두막을 向하여 돌아오다
이미 먹은 것은 흉측한 惡臭와 함께
이렇게도 수헐히 쏟아 버릴 수 있건만
눈에 헛것이 뵈는 주린 창자를 채우기에
또한 廉恥없이 떨리는 헐벗은 종아리를 두르기에
나날이 저질어 지은 이 끝없는 罪苦로
저 크나큰 어두움에 짙어 오는
無限한 밤을 휘두르는 한 점 반딧불처럼
아직 내 염통에 한 조각 남은 良心의 閃光에
때로 秋霜같이 峻烈한 審判을 받는 이 業報는
오오 糞尿처럼 어디매 터뜨릴 곳이 없도다